2025. 6. 22. 11:35ㆍ이슈
일본 사회의 골칫거리, 스트롱 제로: 싸고 강한 술의 이면
스트롱 제로란 무엇인가?
일본의 주류 시장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스트롱 제로(Strong Zero)는 산토리(Suntory)에서 제조하는 츄하이(chūhai) 제품군의 대표 주자다. 츄하이는 소주와 같은 증류주에 탄산수와 과일 향을 섞어 만든 저알코올 음료로, 일본에서 대중적인 음료 중 하나다. 스트롱 제로는 이 츄하이의 하위 브랜드인 -196℃ 라인업의 일종으로, 2009년에 출시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높은 알코올 도수(Strong)와 당류 및 퓨린이 없다는(Zero) 특징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9%의 높은 알코올 도수를 자랑하며, 500ml 캔 한 개의 가격은 약 150엔(약 1,500원)으로 저렴해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스트롱 제로의 인기 비결
스트롱 제로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저렴한 가격과 높은 알코올 도수가 결합된 가성비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저소득층이나 젊은 층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알코올 도수가 9도에 달해서 500ml 캔 하나로도 충분히 취기를 느낄 수 있어, 맥주나 다른 주류보다 경제적이었다. 둘째, 과일 향이 가미된 달콤한 맛은 알코올 특유의 쓴맛을 덮어주어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접근 가능했다. 셋째, 일본의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에서 언제든지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은 스트롱 제로를 일상 속에서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음료로 만들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 경제가 침체되면서,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취할 수 있는 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여기에 음주운전 단속 강화로 인해 집에서 술을 마시는 ‘집술’ 문화가 확산되며 스트롱 제로의 인기가 더욱 치솟았다. 다양한 과일 맛(레몬, 자몽, 복숭아 등)과 드라이 버전 같은 바리에이션도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스트롱 제로
그러나 스트롱 제로의 인기는 단순히 성공 스토리로 끝나지 않았다. 높은 알코올 도수와 저렴한 가격은 빠르게 취하려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지만, 이는 곧 알코올 중독과 같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특히 일본의 젊은 층과 저소득층 사이에서 스트롱 제로가 과도하게 소비되면서, 이른바 “스트롱 제로 문학”이라는 밈이 생겨났다. 이는 스트롱 제로를 마시며 삶의 고단함과 불안을 잊으려는 사람들의 자조적인 표현들이 온라인상에 퍼지면서 형성된 문화 현상이다.
— 일본 트위터, 2017년“어려운 일들을 계속 해결해나가는 것만이 인생이 아니다. 계속 잊어나가는 것도 인생이다. 스트롱 제로는 그것을 도와준다.”
이러한 문구들은 단순한 유머로 그치지 않고, 일본 사회의 불안, 고독, 경제적 어려움 같은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창구가 되었다. 일본 공영방송 NHK가 2017년에 스트롱 제로 문학을 뉴스로 다룰 정도로 이 현상은 큰 화제가 되었다.
스트롱 제로의 과도한 소비는 알코올 중독 문제로 이어졌다. 500ml 캔 하나에 포함된 알코올량은 데킬라 약 3.75잔에 해당하며, 이는 빠르게 과음을 유도할 수 있다. 특히, 저렴한 가격 탓에 빈곤층이나 프리터(비정규직)들이 스트롱 제로를 수면제 대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이로 인해 스트롱 제로 캔으로 가득 찬 쓰레기봉투는 일본 내에서 알코올 중독의 상징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스트롱 제로 문학과 일본 사회
스트롱 제로 문학은 단순한 인터넷 밈을 넘어 일본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 일본은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자살률, 저임금 문제, 고독사(무연사), 노인 돌봄 부족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스트롱 제로는 이러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마법의 물”로 불리며, 특히 젊은 층과 저소득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위로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알코올 의존과 건강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의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미나시타 기리우는 NHK 방송에서 스트롱 제로 문학을 “불안과 고독을 표출하는 도구”라며 긍정적인 측면을 언급했지만, 동시에 “일본 사회가 잘못된 부분을 용인할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일본 사회의 폐쇄성과 경쟁적 구조가 개인들에게 큰 압박을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산업적 변화와 규제
스트롱 제로로 인한 사회적 논란은 주류 산업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 보건당국과 여론의 압박으로 일부 제조사들은 스트롱 계열 츄하이의 생산을 중단했다. 예를 들어, 오리온 맥주는 자사 스트롱 계열 제품(WATTA STRONG)이 수면제 대용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파악한 후 생산을 중단했다. 산토리 역시 스트롱 제로의 광고를 자제하는 등 논란을 의식한 모습을 보였다. 2024년에는 일본 보건당국이 높은 도수의 츄하이 제품에 대해 경고를 발령하며 신상품 발매를 중단하라는 압박을 가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따라 산토리는 스트롱 제로 브랜드를 -196℃로 이름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는 스트롱 제로라는 이름이 가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한국과의 비교
한국에서도 소주와 맥주를 섞은 소맥이나 필라이트 같은 저렴한 주류가 대중적이지만, 일본의 스트롱 제로처럼 알코올 중독을 직접적으로 유발하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진 사례는 드물다. 한국은 오히려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점차 낮추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주류 문화는 여전히 사교적인 모임과 연관이 깊지만, 일본의 스트롱 제로 문화는 개인적이고 고독한 음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 차이가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CU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어프어프 하이볼 같은 9% 도수의 츄하이 스타일 음료가 스트롱 제로와 비교되지만, 가격이 훨씬 비싸(500ml 캔이 약 4,500원) 대중적으로 퍼지지는 않았다. 이는 한국의 주세법과 시장 구조가 일본과 달라 저렴한 고도수 주류의 확산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스트롱 제로가 남긴 것
스트롱 제로는 단순한 주류 제품을 넘어 일본 사회의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저렴한 가격과 강한 알코올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었지만, 동시에 알코올 중독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며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스트롱 제로 문학은 이러한 현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문화적 현상으로, 일본 사회의 불안과 고독을 드러내는 거울이 되었다.
일본 정부와 주류 업계는 스트롱 제로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와 생산 중단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사회적 문제—저임금, 고독, 미래에 대한 불안—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유사한 현상은 계속해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스트롱 제로는 단순히 술 한 캔이 아니라, 현대 일본 사회의 복잡한 이면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남을 것이다.
참고 자료:
- 나무위키, STRONG ZERO
[](https://namu.wiki/w/STRONG%2520ZERO)[](https://namu.wiki/w/STRONG%2520ZERO?uuid=54be9c47-857e-4899-8e1e-8eaefc50474d) - 아시아경제, “日 편의점 인기 주류 ‘스트롱 제로’ 사라진다”
[](https://www.asiae.co.kr/article/2024022010010868984) - 서울신문, “[씨줄날줄] 스트롱제로 문학”
[](https://m.go.seoul.co.kr/news/editOpinion/weft-column/2017/12/29/20171229031015?cp=go) - X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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