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6. 12:47ㆍ영화
100년의 인생을 이틀 만에 살게 된다면?
다소 황당한 상상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그간의 작품들과 달리 예상되는 다소 식상한 결말로 김이 빠진 듯하다. 식스센스(2000년)를 시작으로 빌리지(2004년)나 23 아이덴티티(2016년)에서 느꼈던 충격을 기대했다면 실망한 팬들이 많을 것 같다.
샤말란의 영화는 우리 주위에 있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신비롭게 하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백미는 언제나 마지막에 밝혀지는 반전이었다. 나는 그의 영화가 개봉되면 최대한 그 작품에 대한 기사나 영화 소개 프로는 보지 않았다. 감독이 쳐놓은 깜짝 놀랄 반전이라는 그물에 온전히 사로 잡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위에 먼저 본 친구 녀석이 혹시라도 스포의 한 조각이라도 흘린다 치면 귀를 막고 죽일 듯이 쫓아내기도 했었다. 그만큼 그의 영화에는 마지막까지 내용에 대한 일말의 정보 없이 순수히 백지 같은 상태로 맞이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올드는 뭐랄까? 처음부터 왠지 모르게 캐릭터부터 내용의 흐름에 이르기까지 설계도를 보듯 뚜렷하게 예상이 되었다. 호텔에서 만나 지배인의 조카는 누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소년이던 트렌트에게 실마리를 던져줄 거란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샤말란 감독의 영화 중독에 따른 부작용이었을까? 아무튼 영화 곳곳에서 수상한 흔적들을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이건 마치 완벽했던 연쇄살인마가 어설프게 사건의 흔적을 남겨둔 것 같아 보는 내내 아쉬웠다.
또 하나는 제목에서 오는 스포일러였다. 이미 올드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아무리 둔한 사람도 영화 중반까지 진행되는 노화의 흔적들로 이후 대체적인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나 보여주지 않으려 아이들의 뒤에서 어깨나 팔 부분만을 잡아 낸 카메랑 앵글이 오히려 더 강한 힌트가 돼버렸다. 그리고 카라와 트렌드의 불장난으로 임신을 하게 되고 순식간에 출산까지 하게 되는 과정은 너무 식상했다.
이 영화에서 건질 수 있었던 나름 의미 있는 것은 인생은 짧다란 경각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신비한 해변은 병풍처럼 둘러진 암석의 힘에 의해 한 시간은 곧 바깥의 2년과 같이 지나간다.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면 48년을 보내는 샘이니 아무리 장수할 사람이라도 이틀을 넘기기 힘들다. 결국 이 해변에 들어오면 아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성인이니 이미 하루만 지나도 파파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버린다는 얘기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그게 내일이 될 수도 있고 30년 이후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감독은 해변이라는 특수한 조건을 만들어두고 수십 년을 인생을 단 이틀로 축약해 버렸다. 그럼으로써 영겁같이 길어 보이던 인생의 종착점은 바로 내일로 다가와 버렸다. 이제 죽음으로 내달리는 자신이 피부와 눈과 머리카락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어리석게도 죽는다는 진리를 알고 있지만 바로 코 앞에 닥치지 않으면 무감각한 것이 바로 인간이다. 아마도 감독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인생은 삶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죽음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주어진 시간을 보다 의미 있고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이 시간이라는 소중한 요소의 의미를 더욱 부각하고자 한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이점은 충분히 효과적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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