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죽음을 미리 알게 된다면, 넷플릭스 '지옥'

2021. 11. 28. 12:15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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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의 영화는 '지옥'을 포함해서 5편을 보았다. 애니메이션인 '돼지의 왕'과 '부산행', 그리고 '염력'과 '반도'까지 

결론적으로 그의 작품들 중에서 지옥은 가장 상위에 랭크될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작품과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로 분류하여 선택한다. 하지만 코미디 영화라고 해서 일회성 영화이고, 상을 받은 영화라고 해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분류이지만 적어도 나만의 관점에서 명확한 라인은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상호 감독의 기존 작품들은 오락영화 그중에서도 저급에 랭크된 것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사실 스스로 찾아서 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재밌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부산행도 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염력은.... 정말 뭐라 말하기 힘든 수준이었고 반도에서 정점을 찍어다고나 할까. 

 

상업영화는 관객들이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입소문을 통해서 대박이 난다. 그런 면에서 연상호 감독의 작품들은 관심을 일으키는 데까지는 성공할지 모르지만 대부분 거기까지 인 듯하다. 그래서 지옥은 연상호 감독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깰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사실 지옥은 넷플릭스에서 사전에 떠들석하게 광고를 해대는 통에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다. 지옥에 간다라는 사실을 사전에 고지받는다는 내용 정도, 뭐랄까 인간의 죄와 벌에 따른 권선징악적 요소를 담은 판타지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류의 영화,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처럼 그런 영화일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즌 1의 6개의 편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 성급한 선긋기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지옥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권선징악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큰 주제을 담고 있다. 

 

당신이 죽을 날짜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속에서 오히려 죽음 그것보다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더 고통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고, 고지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자신들의 잘못된 삶을 바로잡기를 권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일면에는 그런 의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더 큰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신이 인간의 잘못을 단죄하기 위해서 세명의 괴수(?) 저승사자(?) 를 보내서 고통을 주고 삶을 회수해가는 과정을 여러 차례 보여준다. 그 사람들은 과거 자진들이 지옥에 갈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 이러한 설정으로 다른 주위의 사람들은 지옥에 갈 것이라는 고지를 받은 사람은 분명 지옥에 갈 만큼이나 나쁜 짓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고지 = 죄를 지은 사람 = 지옥에 가도 마땅한 사람

이런 공식이 성립하게 된다. 또한 이 공식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고지를 받은 사람이 나쁜짓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면 어떻까? 

'지옥'은 바로 이런 가정에서 시작되는 영화이다. 그래서 난 이영화를 좀 더 관심 있게 보고 싶어졌다. 

 

인류는 공포를 통해서만 자신을 죄를 참회하고 그 공포를 맞이하기 힘들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고 정의로워질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 바로 '새 진리회'의 의장인 정진수(유아인 분)이다.

사실 그도 20년 전 지옥에 갈 것이라는 고지를 받았다. 자신의 죽음이 시시각각 조여오면서 느꼈던 공포가 자신을 좀 더 정의롭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고자 새 진리회를 만들고 고지를 받고 지옥에 가는 '시연'을 증거로서 활용한다.  

 

지금 신께서는 너무 직설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런 신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  

그는 신의 고지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던 박정자라는 여인이 지옥에 가는 시연을 생중계함으로서 드디어 자신이 원했던 메시지를 온 인류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자신 역시 지옥의 시연을 받고 죽게 된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권선징악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여기에서 끝났을 테지만 오히려 시작점이라는데 포인트가 있다.

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의 잘못을 시연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했기에 우리 모두는 정의로워야 한다. 하지만 신과 인간 사이에 신의 지시를 받는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인간과 신의 사이에 위치하려는 또 다른 무리가 바로 새 진리회이다. 그들이 인간세계에서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서는 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즉 나쁜 사람만이 고지를 받는다는 그 확실하면서 단순한 진리가 바로 인류의 정의로움을 지탱해줄 수 있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방송국 PD 배영재(박정민 분)와 그의 아내 송소현(원진아 분)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고지를 받는 일이 일어난다.

 

갓 태어난 아이가 고지를 받았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 문제는 그동안 정의로운 사회를 지탱하던 새 진리회의 논리와 배척되는 사건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를 감추고자 한다. 왜냐하면 아이가 고지를 받았다는 것을 현생에서 잘못을 하지 않은 사람이 고지를 받은 꼴이 되고 그동안 고지를 받고 죽어간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원죄의식사상을 통해서 아이가 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기에는 기존의 종교적인 사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새 진리회가 추구하는 논리와 맞이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진리회는 이런 자신들의 논리와 사상의 오류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아이를, 그 증거를 없애고자 한다. 그 아이의 존재가 밝혀지면 사회는 다시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결국 시간이 되고 아이는 지옥의 고지대로 시연을 당하지만 부모의 보호아래 죽지 않고 살아난다. 이는 전국에 방송되고 새 진리회의 민낯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첫 시연이 공개되었던 박정자 씨의 시신이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면서 시즌1이 마무리 되게 되는데 아마도 시즌 2를 기대하기 위한 떡밥에 일부라고 생각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결국 죽지만 죽는 시점이 다를 뿐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모두들 어찌 그리 태평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자신의 죽음이 어느 먼 영원의 순간에 있다고 착각하기에 가는한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시점이 명확해지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된다. 그전의 살았던 방만하고 생각 없던 날들은 후회로, 앞으로 남은 얼마간의 유한한 시간들은 매우 소중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을 소중히 쓸 정신도 없이 아마도 시시각각 조여 오는 공포에 먼저 손을 들지도 모른다. 

지옥에서 말하는 지옥에 의미는 오히려 시연을 당하는 당사자 보다 자신이 시연을 당해 죽게 되면 그에 따라오는 자신은 죄인이라는 공식이 더 두려운 것일지 모른다. 자신은 그렇게 죽어 지옥에 가면 그만이지만 그의 가족들은 죄인의 가족으로 싸 잡혀서 살아있는 지옥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시연을 남에게 들키지 않고자 인적 드문 곳을 찾아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자 한다. 

 

신이란 것이 있다면, 신이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 사실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심판은 신이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인간을 판단할 때 그게 바로 지옥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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