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6. 10:30ㆍ삶의 지혜
계란 프라이. 볶은김치 콩나물 해장국과 김
오늘 아침 메뉴이다.
아침에도 25도를 넘는 걸 보니 지난날의 열기가 밤사이 계속되었나 보다. 이제 7월에 들어섰으니 여름이란 놈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뽐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아침 식욕도 떨어져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섰다.
세상에서 가장 측은한 사람은 아마도 추억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젊은 시절 만들어 놓은 추억은 중년 이후 살아갈 자양분이 된다. 하루하루 추억의 영양제를 한 알 한 알 꺼내 먹듯이.
세상에서 가장 측은한 사람은 아마도 추억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어릴 적 말썽 피워 꾸중 들은 일, 친구와의 여행, 연인과의 러브스토리, 소중한 것을 떠나보낸 슬픔 등등..
어릴 적 난 아주 활달한 아이는 아니었는데 간혹 뜻하지 않게 저지른 사고들이 많아 부모의 속을 무던히 썩였더랬다.
초등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봄날.
집 근처에는 커다란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전부 잔디로 둘러진 덕에 또래 친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였다. 그날도 모여서 놀다 우연히 버려진 라이터를 한 녀석이 발견했다.
"이거 켜지나 볼까?"
동그랗게 모여서는 안 켜지는 라이터를 들고 몇 번의 시도 끝에 잔디에 불을 붙이는데 성공했다. 뭐 별거라고 친구들과 불구경을 하다가 갑작스레 불어닥친 봄바람에 불이 넓게 옮겨붙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미 모였던 꼬마 녀석들은 꽁지를 내빼 버렸고, 나만 남아 근처에 생솔가지로 불을 꺼 보려 했다. 하지만 5월에 잔디는 어느 것보다 잘 탄다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갑작스레 겁이나 집으로 도망쳐 내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꿈을 꿨는지 몸이 뻐근한 걸 느끼며 방문을 여니 아버지가 늦은 저녁을 드시고 계셨다. 잠시 후
위산에 불이 나서 끄고 오느라 늦은 저녁을 들고 계신다는 어머니에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 뭐 아는 거 있냐고 아버지가 물으셨다.
"아. 아니요. 거기 불이 났어요?"
어린 꼬맹이의 어설픈 연기는 금방 탄로 나고 만다. 그날 난 아버지께 엄청 맞았던 거 같다. 훗날 알았지만 내 신발에 잔뜩 묻은 검댕이를 보고 아버진 이미 알고 물으신 거라고 했다. 그을린 머리칼에 얼굴과 옷에 묻은 탄 냄새라는 확실한 물적 증거가 말해주고 있었다.
아이들의 거짓말이 보이는 건 내가 부모가 돼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하여튼 그때 혼난 이후로 아버지께 거짓말을 할 엄두도 못 내었던 것 같다.
추억은 찰나의 시간이지만 그 시점으로 날 소환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추억은 찰나의 시간이지만 그 시점으로 날 소환하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추억이 없다면 이전으로의 시간 여행은 못하게 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많지 않지만 추억 부자가 되게 해주고 싶다. 학원. 집. 학원. 집만 반복하는 지금의 녀석들이 한층 더 안쓰러워 보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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