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고문사 30주년을 통해 본 진정한 용기

2021. 8. 20. 10:00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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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사 30주년을 통해 본 진정한 용기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하고 쓰러졌습니다.

 

 30년 전인 1987년 1월 14일, 21살 꽃다운 나이의 대학생이 경찰에서 수사 받다가 숨졌습니다. 숱한 의문이 제기됐지만,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고 발표했지요. 쇼크사로 위장해서 덮으려던 경찰의 의도는 권력과 상부의 압박에 굽히지 않은 한 검사와 부검의에 의해 꺾였습니다. 물고문으로 숨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의한 정권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불붙기 시작해, 6월 29일 마침내 권력을 무릎 꿇리고 민주화를 이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검사가 한밤중의 시신 화장을 허락했다면, 부검의가 경찰 요구대로 심장 쇼크사로 사인을 바꿔줬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진행됐을까요?

 

민주주의는 더디게 왔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87 ( 개봉2017. 12. 27)

 

 

저는 이 내용을 최근에서야 '1987'이란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87은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고 도심도 아닌 시골의 정보라는 것이 굼벵이 보다 느렸기 때문입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취업에 급급한 불쌍한 취준생에 불구했던 터라 변명 같지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질 사치 따위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영화 속 하정우 씨가 분한 검사와 부검의분이 실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찰이 죽은 박종철 학생을 데려와 화장으로 사건을 덮으려 했을 때 정부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아선 최환 변호사님(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 과 부검 결과를 조작하려는 불의에 맞서서 본인이 맞이하게 될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혔던 황적준박사님(당시 부검의)입니다.

최환변호사님(왼쪽) 황적준부검의님(오른쪽)

 

 

당시는 전두환 군부정권 시대로 그런 정부를 상대로 진실을 밝힌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이 두 분을 답변은 오히려 너무나 담백해서 더욱 마음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정의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라서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그건 단지 직업윤리상 책임감과

상식에 따른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부검의로서 확인된 죽음의 원인을 알리는 것.

그리고 검사로서 정부의 일이라도

부조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

단지 그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영웅이 되고 싶어서 한 일이었다면 오히려 한순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끝났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상식의 기준에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두 분이 어느 위인들보다도 크게 느껴지고 그 울림이 아직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의 노력이 모여 우리가 불의에 휘둘리지 않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이 지났지만 '박종철 고문사'로 이어지는 교훈 현재진행형입니다.

 

리들이 이들의 정의로운 행동에 대해서 기억해 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보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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