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5. 09:00ㆍ삶의 지혜
결핍이 가져다 준 선물
어릴 적 내 취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뭐 거창할 것도 없이 자동차나 집, 사람 등 낙서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던 시점 시골에서 무료함을 달래기 주는 유일한 친구였기에 나는 보이는 종이에 귀퉁이 귀퉁이마다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는 것이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학교에 입학한 뒤 알게 된 사실이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그 시절 농사짓던 부모님들이 자식을 위해 알려 줄 수 있는 정보라는 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면 이런 고생 안 하고 편히 살 수 있는 것이라는 단편적인 것들뿐이었다. 나 역시 더 이상 그림은 그리지 않고 부모님이 말한 그 순탄한 목적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였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먹고 싶었던 건 친구들이 먹던 급식 우유였다. 나이키 운동화라는 건 중학교에 올라와서 처음 알게 됐고, 갈비를 먹어 본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삼겹살을 먹게 된 것도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런 경제적인 결핍이라는 것이 부모님의 의도에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어린 나에게는 일말 도움이 안 되는 쓸데 없는 불평거리였었다.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결핍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핍은 부족한 그 대상을 갖고자 하는 욕구를 발생시킨다. 물론 그것이 과하면 집착을 불러오기도 한다. 하지만 욕구이든 집착이든 목적하는 바에 대한 구동력 또는 에너지원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부분이다. 왜나하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그 결핍의 대상물이 나를 이끌어 주는 에너지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핍이 없는 사람들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핍이 없다면 그 대상물에 대한 진정한 가치나 소중함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위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설명해 주더라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중함은 누군가가 설명해 준다고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결핍에 소중함은 바로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이 풍요롭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그들이 소유하는 모든 것 새 대한 소중함을 모르고 산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가치를 모른다는 것과 같다. 결핍이 있는 사람은 연필 한 자루, 물 한 병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결핍이 주는 선물이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부족한 것 없이 키우고 싶은 것은 당연한 바램일 것이다. 내 아이가 결핍 없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어느 누구가 원치 않겠는가?
하지만 결핍이 없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길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다는 오해 또는 갖고 있는 소유물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소중히 다뤄야 하는 것들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제외한 어떤 것이라도 결핍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바르게 잘하기를 원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원하는 모든 것을 준다고 해서 그 아이가 무엇을 어떻게 될지 말이다.
결핍 속에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가치가 숨어있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어떤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고 시다면, 결핍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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