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라는 이름의 고문

2021. 8. 5. 10:53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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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목장에 낯선 이들이 목책을 뛰어넘는다. 그러고는 이내 목장을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들 간의 교전이 벌어진다. 어릴 적 본 서부영화의 줄거리는 대부분 이런 식이였다. 그런 싸움 속에 죽은 부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뻔한 스토리. 그렇지만 그런 스토리가 스크린 속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한답시고 괜한 질문과

과도한 관심으로 상대방을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너무 쉽게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를 건드린다. 상대방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마치 그것이 관심이고, 배려라는 듯이 가식의 포장지로 잘 싸진 선물을 말이다.

가식이라니? 이건 진심이라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맞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과도한 관심은 결국 상대방의 영역에 무턱대고 침입한 악당이나 다를바 없다. 다만 대부분 이런 경우 이 악당들을 무찌르고 밀어낼 힘이 없어 무지막지하게 내 땅을 침입한 그들에게 죄인처럼 이런저런 변명 꺼릴 늘어놓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다고 해서 모든 것들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건 보편적인 가치가 모두의 가치를 대변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내 기준에 빗대어 다르다면 왜 그런지 묻지 말자. 그건 오만이다. 당신이 모든 것의 기준이니 왜 내 기준에 맞지 않는지를 설명해 보라는 식의 오만 방자함.

 

사실 나도 어릴 적 이런 생각을 했었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딸린 식구가 하나 둘 늘어가면서 그때의 생각들을 하나 둘 잊어버리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때의 꼰대들 같은 질문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 본 시험은 잘 봤니?"

"공무원 그런 거 해서 뭐 하려고?"

"이런 시국에 회사를 그만두면? 뭐 할 건 있고?"

"나이가 곧 3학년 5반인데 결혼 안 해?"

 

이런 오지라퍼 같은이라구...

 

그들의 삶과 행동방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자. 진정한 배려는 상대방을 보편적 기준에 끼워 맞추고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이 아니다. 사실 그들이 입장에서도 어쩌면 현재의 모습이 최선일 수 있다. 당신이 뭘 얼마나 알기에 그들에게 되지도 않는 조언을 한단 말인가? 인생을 한 3~4번쯤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해하겠다. 십중팔구 당신의 오지랖은 조언이 아닌 잔소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보편적 기준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개인적 의견이 항상 틀린 것도 아니다.

 

배려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 진정한 배려가 시작됨을 잊지 말자.

오히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지나친 관심보다 무관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쯤 했으면 한다.

 

우리 이제 모두 어른인데 어른 아닌 아이처럼 오해하지 말자. 나의 기준과의 무조건적인 비교도 다른 일반적인 상대와의 대조도 이제 그만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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