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7. 07:52ㆍ삶의 지혜
시간을 먹은 것은 아름답다.
시간은 모든 것들에게 속성을 부여하는 치트키 같은 녀석이다. 오랜 시간을 버텨온 사물에는 원래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큰 가치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서적이 그러하고, 과거 사용하는 밥그릇이 훌륭한 예술품에 견주기도 하며, 심지어 튓마루의 신발 깔던 돌멩이도 그만한 평가를 받는다. 즉 오랜 시간을 겪어온 사물들은 시간에 정비례해서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사람도 그렇다고 볼 수 있을까?
나이를 먹는 것도 가치가 증가하는 일일까?
이 질문에는 쉽사리 대답하기 힘들것이다. 사물과 달리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히려 사회적인 가치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이 말하자면 가치의 정점구간이 존재하기에 그 기간이 지나면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수덕사에서 만난 노인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충남 예산에 있는 수덕사를 찾았다. 가는 길에 산수유도 피고 매화꽃도 활짝 피어서 기분이 좋았다. 마치 점심때에 도착해서 주차할 곳을 찾고 있었다. 정문에서 백여 미터 들어왔는데 검은색 차량하나 가 서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는 멈춰서 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내려서 그 차 앞쪽을 보았는데 다른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길 한 복판에 차를 세우고 간 건가? 사이드 미러가 펴져 있어서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실내를 들여다보니 누군가 차를 새우고 가벼린 것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차주분이 옆에 담배를 태우다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어르신이었는데 차를 빼달라는 부탁에 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 길로 가도 주차할 데 없어, 그래서 여기 주차한 거야.
어차피 주차도 못하는데, 돌려서 가
어르신은 자신이 통행하는 다른 차들의 길을 막고 서 있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다만 자신이 이곳에 주차한 것에 대한 정당성만을 부여하려는듯 연신 같은 말만 했다. 답답한 마음에 차를 비켜 주셔야 뒤에 오는 차량들이 차를 돌려나갈 수 있다 설명해도 같은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어느새 내 차 뒤에는 밀린 차량들이 늘어났고 결국 뒷 차량부터 후진으로 차를 빼야 했다. 이후에도 그곳에서 이런 실랑이들이 되풀이되었지만 꼬장꼬장한 그 어르신은 물러설 줄을 몰랐다.
시간을 먹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시간을 먹는다고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것 같다. 특히나 막무가내인 노인들을 볼 때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연륜이 든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린 사람들 보다 많은 경험을 거쳤다는 의미이다. 많은 경험은 생각을 낳고, 가치관을 형성시킨다. 전후 베이붐 세대의 경우 배고픈시기를 지나 고도성장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형성하는데 주축을 담당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런 역할과 노력들이 자신들의 억지를 정당활 할 수는 없다. 마치 내가 그런 세상을 물려주었으니 나는 당연히 이렇게 해도 된다는 듯이 마무가 내인 노인들이 부지기수이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과 무조건 존중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공정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새로운 세대와 과거 세대의 중간에 있지만, 그런 자세를 취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나이 많은 것은 자랑이 아니다. 그냥 생물학적으로 낡아져 가는 과정일 뿐이다. 인간이기에 그런 시간의 흐름속에서 완벽함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발전해야 한다.
외모를 가꾸듯 생각에도 물을 주고 가지치기를 해야한다.
세상 누구도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외모를 가꾸듯 생각에도 물을 주고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냥 하루하루 낡아져 갈 뿐이다. 수덕사의 그 노인처럼 말이다.
나 자신을 돌보지 않은 노인은 공경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존경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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