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템플스테이 하면서 소시지 먹은 썰

2023. 4. 17. 09:49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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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육식을 할뻔한 최초의 인물 

 지인 중에 사업을 크게 하시는 형님이 있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형님은 업의 특성상 사업의 부침이 있을때면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종교에 대한 지원이 후한 편이었다. 다만 특정 종교에 대한 경계가 뚜렿하지는 않아서 딱히 어떤 종교를 가졌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말하자면 군대에 가면 그때그때 달라서 성당도 가고, 절도 가고, 교회도 가는 그런 식이다. 
 
평소에도 형님은 각종 종교단체게 기부를 많이 했는데, 특별히 전라도에 있는 사찰에는 일 년에 한 번, 템플스테이를 하곤 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사업에 대한 방향도 결정하고 하다 보면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서 매년 해오고 있었다. 그해에도 형님은 회사 직원분과 템플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명상도 하고 좋은 글귀도 읽고, 108배도 하면서 그동안 업무로 찌든 몸과 마음을 씻어내고, 사업적 확대를 위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었음에도 채식으로 일관된 식사는 금방 꺼져버렸고 형님은 평소와 달리 심한 공복감을 느꼈다. 게다가 평소 풀 밭만 있는 식단은 거들떠보지 않는 탓에 몇 끼의 식사에 온통 채식만 한 형님은 육고기에 대한 욕구가 심하게 요동쳤다. 정말이지 삼겹살 같은 거 한쪽만 먹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와중에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그날 저녁식사는 특별히 날이 좋아 실외에서 배식이 이루어졌다. 
 
 바깥 마당 천막아래 길게 늘어선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 밥차에서 보듯 밥과 국 여러 반찬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한식뷔페에서 먹듯이 개인 접시에 밥과 반찬을 먹고 싶은 만큼 올려 먹을 수 있지만 알다시피 잔반은 남김없이 먹어야 했다. 형님은 채식이지만 깊은 허기짐에 뭐라도 많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밥과 반찬을 담았다. 그런데 몇 가지 반찬을 지나치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커다란 볼에 비엔나소시지 야채볶음이 한가득 들어 있는 게 아닌가.

대박, 요즘은 절에서 소시지도 주네?
콩고기인가?
가공육이라 괜찮은건가?


형님은 잠시 망설이다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얼른 커다란 덜 이수저로 소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배가 고픈 데다, 고기에 눈이 돌아가 접시에 거의 반 가량을 소시지로 퍼 담아 올렸다. 형님의 얼굴에는 배고픔의 고통은 사라지고, 부처님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직 먹지도 않았지만, 역시나 너무나 잘 아는 맛이기에 입에는 침이 한가득 고였다. 신자들이 모두 모여 식사 준비가 되자 일제히 식사를 시작하려는 그때였다. 저녁식사를 주관하시는 보살님께서 형님을 향해 말씀하셨다. 
 




 



불자님은 당근을 아주 좋아하시나 봅니다.

 
 


형님은 엉겁결에 자신의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자신이 퍼온 비엔나소시지는 조그만 당근 무침임을 알고는 눈물이 날뻔한걸 간신히 참았다. 참고로 형님이 제일 싫어하는 채소가 바로 당근이다. 배고픔에 미처 이성을 잃고, 어두 컴컴한 조명아래 꼬마당근 무침을 소시지 야채볶음로 오해한 것이었다. 게다가 최악인 것은 접시 절반 가량을 퍼온 탓에 가뜩이나 먹기 싫은 당근을 먹어야 하는 점이었다. 바로 공양에 저주에 걸린 것이다. 평소 인심 좋고 불심이 강하기로 소문나 덕에 형님은 싫은 기색도 할 수 없어 결국 당근요리 반접시를 클리어해야만 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지리산을 내려와서 처음 한 일이 안경을 바꾼 거라고 한다. 그 사건이 있은 뒤 형님은 당근은 말할 것도 없이 소시지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도 해마다 불전함에 돈은 두둑이 넣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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