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야근하는 인간들

2024. 2. 22. 21:54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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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일하는 게 미덕이던 시절


내가 사회 초년생 무렵에는 회사에 오랜 시간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평균 퇴근하는 시간이 11시가 넘었습니다. 물론 개발자였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다른 부서 사람들도 9시까지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정해진 퇴근 시간은 7시 무렵이었지만 이런저런 일을 더 하다 보면 9시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만큼 많은 일을 하고 있었고, 일찍 퇴근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상사라고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본인이 퇴근하지 않으면 부하직원들은 퇴근할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상사들도 본인들의 상사들이 또 있었기에 눈치를 보면서 회사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회사에 오래 남아 있기 시합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아침에 자는 얼굴을 보고, 들어와선 또다시 자는 모습만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매일 아이들의 자는 모습만 보다가 어느새 훌쩍 컸을 때서야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대체 그때는 왜 그렇게 늦게까지 일을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있던 시기였기 때문 같습니다. 회사에 오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게까지 늦은 시간 개인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있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회사의 오랫동안 남아서 본인의 삶을 희생하는 것이 하나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기였습니다.


결과로 인정받는 시대


지금에서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무작정 오래 남아 있는다고 해서 업무 효율이 높은 것도 아니고, 전체적인 일의 흐름이 그다지 빨리 진행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 실적을 상사의 실적으로 가져가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부하 직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희생을 요구했던 시절입니다.

지금 사무실 상황을 살펴보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3시나 4시면 본인의 일과를 정리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그날 스스로의 업무 처리량이 어느 정도 되면 스스로 일을 조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 퇴근이 다른 사람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가차 없이 일어납니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할 일만 제대로 해내면 그 안에서 융통할 수 있는 게 많은 시대입니다.

요즘에 좀 더 좋아졌다고 느끼는 건 단순히 시간이 줄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치 기준이 일의 시간적인 양에서 업무의 질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붙잡고 있더라도 제대로 일을 마치지 못하면 안 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설렁설렁 노는 것 같아도 제시간에 최대로 된 결과물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습니다. 결과로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선배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나 담배로 시간을 보내다가 본격적인 업무는 오후 2시나 3시가 돼서야 시작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분은 다른 사람들보다 오랜 시간 회사에 남아 있었지만 밑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여러 가지였습니다. 좀 더 일찍 시작을 한다면 일찍 끝낼 수 있는 일들을 마치 일부러 야근을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당시에 그런 선배들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었습니다. 나 역시 그런 부분이 가장 싫었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런 문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왠지 선임보다 일찍 퇴근하는 것은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립니다. 좋은 결과물이라는 것은 노력의 시간이 많다면 더 좋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야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업무 효율을 지킬 수 있는 스마트 한 사람이 대우받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의 능력이 인정받는 시대이지만 팀워크로 함께해야 되는 일들도 많습니다. 또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도 많은 도움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너무 매몰차게 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보다 먼저 퇴근하는 후임들을 보는 게 그다지 즐겁지는 않습니다. 먼저 퇴근하더라도 최소한 남아 있는 선임이나 후임에게 미안한 마음은 아니더라도 존중하는 마음은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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