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질하면서 느끼는 어머니의 입장

2024. 2. 9. 12:27삶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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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증후군을 앓다.


나는 외아들이다. 외동아들은 아니지만 아들이 하나인 탓에 나의 와이프는 매년 명절과
3번의 제사를 챙겨야 한다. 1년 5번의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나쁜 남편이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 그 5번의 이벤트를 항상 같이 하고 있다. 이벤트라고 해봐야 결국 음식 준비하는 일이 전부이긴 하지만, 아내가 작은 몸으로 혼자 여러 가지 음식들을 모두 준비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그 고생을 잘 알기에 군말 없이 함께 하고 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면서 명절이 다가오면 소화도 잘 안 되고, 뒷머리가 아파온다. 명절 증후군이 시작된다.

내가 어렸을 때 이보다 더 많은 제사와 명절 음식들을 어머니는 혼자서 준비하시곤 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이렇게 번거롭고 힘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전을 부치고 생선을 삶고, 고기 국물을 낸다. 나물을 무치고, 떡을 빚는다. 명절과 제사를 위해 준비해야 할 음식들은 너무나 다양하다. 게다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음식이기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설 명절은 떡국 제사라서 몇 가지 음식들이 덜 올라가기에 조금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언제나 음식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참 비효율적인 일이라는 점이다. 이런 생각은 해를 거듭할수록 먼지가 쌓여가듯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


음식을 준비하는 데는 두 사람이 아침 7시부터 오후 내일 5시까지 하루 9시간 이상을 꼬박 준비해야만 한다. 그렇게 준비한 음식으로 차려진 행사는 채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10분간의 행사와 저녁 한 끼를 위해서 두 사람이 하루 9시간 10시간을 일해야 한다.

이거야말로 참으로 비효율적인
이벤트가 아닌가?



'명절이 원래 그런 거지 뭘 그런 걸 따지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앉아서 절 몇 번을 한 뒤 식사로 마무리하는 게 고작인 분들일 것이다. 물론 더러 음식 준비를 돕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온전히 허리 끊어짐의 미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처럼 냉동식품도 없고 주방시설도 낙후했던 시절을 보내셨다. 강산이 바뀌는 시간을 5번 넘도록 보내면서도 불만 한마디 하는 법이 없었다. 시어머니라는 강력한 존재를 모시면서 보냈던 시간이기에 더욱 힘든었던 시간일 것이다. 내가 새삼 명절 때마다 어머니의 위대함을 되새기게 되는 이유이다.

어떤 절충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뉴스에서는 명절 연휴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의 소식이 가득하다. 어느샌가 명절 연휴에는 해외여행으로 떠나는 사람들로 항공티켓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 사람들은 무슨 복이 있어서 그럴까 생각을 해 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지금 이게 맞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직접 철질을 하면서 경험한 당사자이기에 명절의 부당함을 안다. 가족끼리 간단한 음식을 나누는 가정이 늘고 있단다. 아마도 이런 심정을 가진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많기에 절충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명절이 없어 지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곳곳에 흩어진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몇 번 안 되는 의미 있는 기회이기에 없어지는 건 반대다. 다만 어는 한쪽만 힘든 기울어진 휴일이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의미 있고 기쁜 시간으로서의 시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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