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2. 11:16ㆍ삶의 지혜
술은 먹을수록 늘더라.
주량도 용불용설을 따라가더라.
나는 선천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아버지는 맥주를 한 잔도 못 드셨다. 다만 어머니는 막걸리 한 병 정도는 드시는 것 같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DNA를 받았으니 사실상 술에 대한 면역력은 저질 수준일 수밖에 없다. 술과는 그리 친하지 않은 몸을 타고난 것이다. 그런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기에 술자리는 그다지 끼고 싶지 않았다. 아예 술은 인생에서 그리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가 술을 처음 입에 댄 시기는 아마도 고3시험이 끝난 그날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자취방에 모여서 맥주 한 모금을 홀짝이었는데 그때 당시엔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몇 잔을 연거푸 먹었던 것 같다. 그래 봐야 마신 맥주가 2병 정도? 하늘이 핑핑 돌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사내자식들 사이에서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왜 술을 먹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소주가 아니 술이라는 것이
사람을 이리도 고통스럽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아가기 시작한 건 아마도 대학에 들어와서였던 것 같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억지로 먹었던 사발소주는 최악이었다. 소주가 아니 술이라는 것이 사람을 이리도 고통스럽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에 사발소주는 알코올 그 자체가 아니라 신입생에게 가해지는 회초리와도 같았다. 정말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어서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회초리였다.
학기 내내 연이어 펼쳐지는 술자리에 먹고 싶지 않아도 마시게 되는 술들은 어느새 내 몸에 일부가 되어 갔다. 맥주를 마시고 , 체리 소주를 마시고, 레몬 소주를 마시고, 막걸리도 마시고 주종을 가리지 않고 술에 가까워졌다. 가장 좋은 선배는 책을 빌려주는 선배도 아니고, 술을 많이 사주는 선배였다. 어느덧 술에 익숙해져 갔다.
군대에 들어가 보니 마실 수 있는 술이 있지만 마실 수 없었다. 보이지만 행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고통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BX를 지나다 보면 얼마든지 술을 볼 수 있지만 1잔도 마실 수 없었다. 그나마 우리에게 허락된, 가끔 있는 회식에서 소주 한두 잔 많아야 한병 정도였다. 나의 주량은 급격히 떨어져 갔다. 술에 대한 욕구도 사라저가고, 마실 필요성도 없었다. 오히려 술을 마시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기에 오히려 더 건전한 방향으로 체질변환이 된 것 같다.
사회에 나왔지만 나의 떨어진 주량은 다시 올라갈 기미가 없었다. 당시 내 주량은 소주 반 병이었다. 반 병을 마시면 바로 취해서는 아무 곳에나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회사 동료들도 선배들도 나의 치명적인 병(?)을 고칠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회식에 첫머리만 기억나고 끝에는 도대체 어떻게 끝났는지 항상 미스터리였다
명절날이면 항상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어떻게 됐든 나의 주량을
올려야만 했다.
그렇게 지내던 날들이 몇 년을 지나고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와이프와 둘이서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취해서 했던 첫 키스이다. 그런데 문제는 처갓집에 주량이었다. 장인어른은 말로만 듣던 '술고래'이셨다. 앉은자리에서 7~8 병의 소주를 드시는데 주량뿐만 아니라 속도 또한 대단했다. 소주잔으로 마시지 않고 오비맥주 글라스에 항상 드셨다.
첫인사 간 날 나는 그야말로 좀비가 되었다.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실신은 하지 않았지만 결국 지금 아내와 처제의 부축을 받아 나와야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이 맘에 드셨던 지 나는 수월하게 결혼해 골인했다. 하지만 항상 힘든 것은 매년 반복되는 명절날이었다. 명절날이면 항상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어떻게 됐든 나의 주량을 올려야만 했다.
술을 마시고 또 마시고 깨면 또다시 마시는 연속된 과정이 명절마다 한 반복됐다. 그러면서 나의 주량은 알게 모르게 한병 두 병 늘어났다. 지금은 앉은자리에서 서너 병은 거뜬히 마신다. 아마도 인사불성으로 마시자면 더 마실테지만 사람답게 마시려면 그쯤에서 끊어야 할 것 같다.
결론은 사람의 몸은 용불용설을 철저하게 따른다.
모든 연습하면 늘고, 횟수가 많아지면 발전하기 마련이다. 주량 역시 많이 마시고, 자주 마시면 늘기 마련이다. 내가 그 살아있는 증거이다. 나의 손위 동서형님도 결혼 전에 소주 1잔이 주량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분도 지금은 한 병을 드신다. 사람은 누구나 동일하다. 반복된 노력과 시도는 분명 결과를 이뤄낸다.
그게 좋은 것이든 안 좋은 것이든 간에 많은 입력이 있으면 반드시 출력이 된다. 다만 효율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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